터키 정보
간략설명 | 지인아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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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성당(아야소피아)
간략설명 | 지인아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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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블루모스크)
간략설명 | 이스탄불의 상징이자 비잔틴 건축의 최고봉은 아야 소피아입니다. 터키를 점령한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 성당이던 아야 소피아를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했습니다. 여기에 성이 차지 않았는지 오스만 제국의 사람들은 바로 건너편에 아주 비슷하게 생긴 아름다운 사원 하나를 더 지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을 가진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입니다. 사원 안쪽을 2만개의 푸른색과 녹색 타일로 장식했기 때문에 해가 막 뜬 아침이나 해질녘에 가면 빛에 반사된 타일이 황홀한 파란 빛을 만들어냅니다. 터키의 이슬람사원으로는 유일하게 6개의 첨탑이 세워져 있는데 첨탑의 갯수는 사원의 레벨을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건설당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원 건설을 지시한 황제가 금(Altin)으로 만든 첨탑을 세우라고 지시하고는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갔는데, 금을 조달할 수 없었던 건축가가 금이 아닌 6개(Alti)로 잘못 듣고 세웠다고 변명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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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주소 | 소아시아 아나툴리아 고원의 북쪽 기슭 동경32°52′ 북위3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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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http://www.ankara.bel.tr/ |
간략설명 | TV 예능에서 수도이름 맞추기 게임을 할 때 꼭 등장하는 것이 '터키의 수도'를 맞추라는 질문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스탄불이라 답하기 때문입니다. 터키의 수도는 바로 이 곳 앙카라입니다. 이스탄불이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이라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비해, 앙카라는 터키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1923년 터키 공화국을 세운 지도자 아타튀르크가 '더 이상 서방권력의 침입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곳을 수도로 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발 800미터를 넘는 고원인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그 추측을 뒷받침합니다. 그렇다고 앙카라가 서방의 침입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기원전 2천년 갈라티아 왕국의 수도시절부터, 로마와 페르시아, 아랍, 십자군,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바 있는 곳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앙키라', '앙고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
괴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유적
간략설명 | 터키의 한 가운데 아나톨리아라는 이름의 고원이 아주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해발 고도 1천미터가 넘는 그 고원의 중앙부 화산지대를 카파도키아(Cappadocia) 지역이라 부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땅이지만 터키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곳에 동굴 속 지하도시를 만들어 살아왔습니다. 로마 지배하의 비잔틴 제국 시절, 종교 탄압을 피해 이 곳으로 숨어 들어온 기독교인들은 괴레메 계곡 근처 바위산 여러 곳에 동굴을 뚫고 그 안에 놀라운 수도원과 성당을 건설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곳을 은신처로 택한 이유는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을것만 같은 계곡 전체의 신비로운 풍경때문입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자 은신처였던 이곳은 성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고난의 현장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뿐, 7세기 후반 이슬람 제국이 아나톨리아를 침공했고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피난민들이 다시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로 숨어들었습니다. 한때 그 인구가 6만명을 넘기도 했기 때문에 지하도시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10세기 경에는 동굴 속 성당과 수도원이 360개를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이후 여러차례 권력이 교체되었지만 기독교인들은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카파도키아와 괴레메 계곡은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인상적인 벽화와 함께 전설이 되었습니다. 카파도키아는 여행의 추억을 담는 사진을 찍기에 무척 좋은 곳입니다. 배경과 뚜렷이 대비되는 화려한 색상의 옷차림을 준비하시면 좋습니다. 한겨울엔 무척 추운 곳이므로 내의와 목도리, 장갑과 모자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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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 온천수와 히에라폴리스
간략설명 | 터키여행을 준비하다보면 반드시 사진으로 한번쯤 만나게 되는 곳, 바로 '목화의 성'이라 불리는 파묵칼레 온천입니다. 로마시대에는 히에라폴리스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계단식 논처럼 끝없이 이어진 흰색의 웅덩이에 푸르른 온천수가 담겨 있는 환상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온천수의 온도는 35도 정도, 아주 옛날 로마시대에는 온천욕을 하면서 병을 고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환경보호를 위해 파묵칼레에서의 온천욕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산위에서 솟아난 온천수가 수백년동안 산을 타고 흘러, 그 석회석 성분이 바위를 탄산칼슘의 결정체로 만들어 이런 자연의 예술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여행자들은 석회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맨발로 관광하게 됩니다. 온천 부근에는 고대도시도 있습니다.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로마시대에는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 불렸고, 11세기 후반 셀주크 왕조가 파묵칼레라는 지금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1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의 유적과 신전, 1천기의 무덤이 아직 남아있는 공동묘지도 있습니다. 파묵칼레 주변은 모두 백색이므로 햇볕이 강하게 반사됩니다. 이를 차단할 선글라스와 노천온천을 맨발로 관광할 때 신발을 담을 봉투와 발수건을 준비하시면 편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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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문명의 꽃, 에페소
간략설명 | 에페소는 2,500년보다도 훨씬 전,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건설된 터키 최대의 고대도시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성경의 '에베소서'는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2년간 수형생활을 하며 쓴 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것이 성경의 에베소서입니다. 사도바울은 선교여행을 하며 에페소에 교회를 세우고 3년간 거주한 바 있습니다. 터키의 서쪽 끝, 에게해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 에페소는 수천년전부터 중요한 상업의 요충지로, 고대문화의 꽃을 피운 예술과 문명도시로 발전해왔습니다. 특히 기원전 6세기에 세워진 아르테미스 신전은 현재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으며, 오래도록 인근 나라들과 그리스로부터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성지역할을 해왔습니다. 도시 전체가 유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리스 로마 시기에 세워진 유적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헬레니즘 양식으로 축조된 도시의 성벽과 켈수스 도서관, 이즈미르 아고라와 원형 대극장 등이 유명합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정식 명칭은 '에페수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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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페리 탑승시 주의사항
간략설명 | 나이트 페리는 기본 4인1실 기준으로, 2인1실로 업그레이드를 원하시는 경우 1인 5만원(편도)의 추가경비가 발생하며, 당일 좌석 상황에 따라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할 수 있으니 반드시 담당자에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풍랑 등의 현지 기상상황이나 파업 등의 현지상황에 의해 페리를 이용하지 못하고 항공이동으로 대체되는경우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추가요금은 당일 항공 좌석상황에 따라 부과됩니다.(국외여행 표준약관 13조 2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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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간략설명 | 지인아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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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타그마 광장
간략설명 | 아테네의 중심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를 여행하면서 가장 자주 지나가게 될 길목으로 이 곳을 대표하는 '국회의사당'과 '무명용사의 비'가 눈의 띕니다. 아테네를 대표하는 각종 공공기관, 특급호텔 및 유서 깊은 건물들과 고급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고, 세계 유명 브랜드들의 매장과 간단한 길거리 음식인 케밥 혹은 수블라끼 식당 등 서민적인 공간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공항과 연결되는 버스편이 이곳에서 출도착하고, 주요 버스 및 트램노선이 모두 이곳을 거쳐가므로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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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
간략설명 | 지인아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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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
간략설명 | 정말 말도 안되는 인간 건축사의 기적같은 곳입니다. 올라가는 길도 오르는 도구도 전혀 없는 접근 불가능한 바위산 꼭대기에 들어선 엄청난 수도원들. 이 곳에 서면, 절대자를 갈망하는 인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 엄숙해지기까지 합니다. 수도승과 은둔자들은 경건한 곳에서 기도를 할 수록 신을 만날 확률이 높을 것이라 생각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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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관광] - 돌마바흐체 궁전 60유로
간략설명 |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바닷길을 따라 작은 만을 메우고 그 위로 600미터 정도 길게 서 있는 바다 위의 궁전입니다. 19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재건을 꿈꾸며 압둘 메지드 1세의 지시로 세워진 화려한 궁전으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오스만 제국 말기의 황제들은 수백년 동안 터키의 정궁이었던 톱카프 궁전을 버리고 이 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 했으며, 그가 이 곳에서 집무를 보다 쓰러져 사망했던 시간을 기리기 위해 궁전의 모든 시계는 아타튀르크의 사망시간인 9시5분에 멈추어 있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사받은 750개의 전구로 장식된 화려한 샹들리에가 '황제의 방'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현재는 터키를 방문한 외국 사절을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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